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원구 을 (문단 편집)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4> {{{#fff {{{+1 '''노원구 을'''}}}}}}[br]{{{#fff 상계1동, 상계2동, 상계3동, 상계4동, 상계5동, 상계6동,[br]상계7동, 상계8동, 상계9동, 상계10동}}}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 {{{+5 '''1'''}}}}}} || [[김용채|{{{#373a3c,#dddddd 김용채}}}]](金鎔采) || 40,551[* 재검표 후 40,443표] || --1--2위 || || [include(틀:민주자유당)] || 32.91% || 낙선 || ||<|2> {{{#fff {{{+5 '''2'''}}}}}} || '''[[임채정|{{{#373a3c,#dddddd 임채정}}}]](林采正)''' || '''40,515'''[* 재검표 후 40,601표] || --2--'''1위'''[* 재검표 결과 당선] ||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32.88%''' || '''당선''' || ||<|2> {{{#fff {{{+5 '''3'''}}}}}} || [[홍성우(1941)|{{{#373a3c,#dddddd 홍성우}}}]](洪性宇) || 29,621 || 3위 || || [include(틀:통일국민당)] || 24.04% || 낙선 || ||<|2> {{{#fff {{{+5 '''4'''}}}}}} || [[전대열|{{{#373a3c,#dddddd 전대열}}}]](全大烈) || 2,589 || 5위 || || [include(틀:신정치개혁당)] || 2.10% || 낙선 || ||<|2> {{{#fff {{{+5 '''5'''}}}}}} || 오세철(吳世徹) || 9,181 || 4위 || || [include(틀:무소속)] || 7.45% || 낙선 || ||<|2> {{{#fff {{{+5 '''6'''}}}}}} || 장성욱(張成郁) || 743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0.60%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74,554 ||<|3> '''투표율'''[br]71.21% || || '''투표 수''' || 124,292 || || '''무효표 수''' || 1,092 || 현역 3선 김용채 의원이 박정희의 '혁명 동지'이자,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냈고 국회 건설위원장인 거물인만큼 그를 꺾기 위해 여러 인사들이 도전하였다. [[민주당(1991년)|민주당]]의 [[임채정]] 후보는 [[문동환]], [[박영숙]]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던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에 13대 총선에서도 김용채 의원에 도전했으나 패했다가 다시 도전했으며, [[통일국민당]] [[홍성우(1941)|홍성우]] 후보는 [[민주공화당]]에서 정풍 운동을 주도한 3선 의원으로 정계은퇴를 했다가 이번에는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서 공천받아 출마하였다. 진보인사인 무소속 오세철 후보도 나왔다. 개표 결과 김용채 후보가 임채정 후보를 불과 36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어 5선에 성공했으나, 재검표에서 결과가 바뀐다. 군부재자 투표의 100표 다발 하나가 잘못 집계된 것이 드러나 오히려 임채정 후보의 역전승이 선언된 것이다. 김용채는 당선 후 정무제1장관에 임명되었으나 재검표 결과 때문에 의원직 뿐만 아니라 장관직도 잃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